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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민속문화재 지정 및 용아기념관 건립추진

초석이 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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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 조회 773회 작성일 22-01-27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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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작은 거인을 보다 

                                                                                           사)용아박용철기념사업회

                                                                                                            원장 이 현 선

 

! 이토록 아름다울 수가

 

1 어느 날 회장님의 전화다

 

 “이 원장! 내가 길을 가다가 전봇대 홍보물에 나두야 간다라는 연극을 한다고 했던데 우리 기념사업회와 관계가 있는 거요?”라고 하신다. 나는 전혀 모른 일이라 했더니 연극 하는 날 서구문화센터에 같이 가서 관람하자고 제안을 하신다.

기념사업회의 일에서 멀어졌지만, 아직도 관심을 갖고 계신다니 의아해 하면서도 참으로 고마운 마음에 망설임 없이 따라나서 그날 두 시간여 공연 관람에 동행했다.

 

일제강점기 우리 문화 말살 정책에 맞서 민족 문예 운동에 앞장섰던 <용아 박용철> 선생께서 정지용, 영랑(김윤식)과 함께했던 순수시 문학의 선구자로 활동했던 이야기들을 잘 엮어 만든 연극이다. 보는 내내 가슴 절절히 아려오기도 하고 때론 씁쓸하기도 하며 분노가 치밀기도 했다. 말살되어가는 우리말을 지키고, 우리 문학의 완성을 이루기 위한 선구자적 노력은 한국의 지성인이라면 누구나 익히 아는 바이다. 선생은 순수 문학 동인회 <시문학파> 활동과 <극예술연구회> 임원으로서 적극적인 활동을 하면서, 외국 시와 희곡을 번역하고 평론을 발표하는 등 한국 문학사에 지대한 족적을 남기셨다.

 

우리가 관람한 연극은 암울했던 시대에 선생이 남긴 업적을 극예술로 재조명해서 후대에 알리기 위한 계기로 이끌 수 있어 더욱 좋았다. 이같이 의미 있고 소중한 문화유산인 예술 활동을 광주시민 누구나 꼭 보고 체득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면서 지금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자긍심을 갖기도 했다.

 

긴 울림을 준 공연은 막을 내리고, 제작진과 함께한 다담회 자리에서 우리 광산구에서도 공연을 할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그 후 지난해(2021)2천여만 원의 예산을 들여 시도하여서 좋은 평가로 공감대가 형성되어, 이 공연을 시발점으로 용아 기념사업회에서 매년 <용아 극예술제>행사를 하게 되었으니 본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일의 일부 성과로 여겨져 매우 기쁘다.

 

이렇게 하시는 최상준 회장님을 ) 용아박용철 기념사업회2대 이사장으로 삼고초려 끝에 어렵사리 모셨는데 결국 고생만 하시다가 이렇다 할 결실은 얻지도 못하고 임기를 마치셨으니 소신껏 모시지 못한 내 탓인 것만 같아 송구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참이었다.

 

2 꿈꾸는 자의 꿈은 이루어지는 것일까.

 

본 기념사업회 이사장 이취임식 행사를 치루고 나서 최상준 회장님께 재직감사패를 전달하러 갔다

회장님은 며칠 후 이용섭 시장님과 저녁 만찬이 예정되어 있다면서 무엇을 부탁할까 물으신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용아박용철 기념사업회지원 조례 제정을 부탁하면 좋겠습니다.” 했다.

며칠 후

시장님은 용아 생가를 잘 모르시더구먼.” 하시면서 회장님께서 이용섭 시장님께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시장님, 내가 강진 영랑생가에 가 봤더니 <시문학파 문학관>에서 직원 5명이 근무하는데 강진군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습디다. 우리도 용아 생가에 <용아 기념관>을 짓게 되면 시에서 운영해 줄 수 있습니까?” 물었더니 시장님께서 명쾌한 답을 주셨다고 한다. “에서 운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 하시기에 시에서 용지를 마련해 주면 기념관 건립은 회장님께서 하시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말씀을 듣고 있던 나는 도깨비방망이를 얻었거나 복권 당첨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다음날 아침에 생가에서 보자고 하신다.

이튿날 아침 설레임은 발걸음도 가볍게 했다. 그곳에는 벌써 회장님과 건축설계사 그리고 시청 담당 직원들이 와 있었다. 그들은 행정적 타당성 조사를 하러 왔던 것이었다. 하지만 생가 옆 부지에는 문화재 건축 허가 충분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크나큰 사업을 착수하는 일이 어디 그리 수월하기만 하겠는가. 마음을 다잡고 참여했던 인원들이 머리를 맞댄 고심 끝에 결국 차선책을 택하기로 결정했다. 적당한 주변 부지를 찾아서 구청과 협의 후 매입하기로 하고 그날의 일정은 마무리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시청 담당자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시장님께 상황을 보고했더니 도시계획을 변경해서라도 그 자리에 건립하도록 하라시며 유족들에게 연락해서 생가 부지를 절반 값에 사들여 보라고 하셨다는 희망적 전갈이다. 현재의 평가금액이 8억 원 정도니까 4억 원 정도에 매입해 달라는 것이다. ‘좋아서 가는 길이면 천 리 길도 십 리처럼 가볍다.’더니 꼭 이루어야만 할 일이고 이루려고 하니 일사천리로 잘 풀려나간 듯했다. 너무도 들뜬 마음에 용아 선생의 차남 박종률님께 이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

 

며칠 후 박종률 회장으로부터 답변의 전화가 왔다.

생가 부지 소유주가 장형님 박종달의 손녀 박수경 앞으로 되어있는데 자기 어머니(박종달 부인)의 반대로 인해 일언지하 거절했다는 것이다.

예측을 뒤집는 반응으로 온갖 기운이 다 빠진 듯했다.

 

그래서 나는 사모님(박수경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청에서 적극 협조하게 되어 용아 선생의 기념사업이 크게 융성할 것 같다, 생가 부지 공터를 시청에서 매입하여 기념관을 짓겠다고 하니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했더니, 사모님은 우리 유산이 그것밖에 안 남아 있어 그대로 보존하고 그 땅에 나무도 심고 꽃도 심겠다고 하시면서 팔지 않겠다고 한마디로 거절하신다. 참 기가 막혀 할 말을 잃었다.

힘없이 전화를 끊었다.

 

선생 생전 문학예술에 기여한 공적이 묻혀버린 것에 대해 후손들은 전혀 관심이 없는 듯했다. 꿈꾸다 벼락 맞은 듯한 그 기분을 누가 알기나 할까.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절망감. 혹자들은 아무것도 없던 선조의 공적을 억지스럽게 만들어 비를 세우고 기리기도 하는데, 아무렴 후손들에게 문학적 DNA는 없다 하더라도 혈통 간의 DNA는 뼛속 깊이 있을 텐데···

선조의 공덕을 기리는 것은 후손들에게도 긍지가 되고 앞날을 위해서도 좋은 일인 것을 모르는 것인지 쩝쩝 입만 다셨다.

 

이러한 상황을 최상준 회장님께 말씀드렸더니 어른께서도 의아해하시면서 조심스럽게 시간을 두고 차차 이해시켜 보자고 하신다.

회장님은 손수 편지를 써서 서울 박종률에게 보내 가족들과 잘 이루어지도록 해보라고 하고 나는 나대로 박수경에게 문자 대화를 시도해 봤지만 돌아온 답은 철벽같이 고정되어있었다.

회장님께서는 안 되겠다는 판단이 서자 시청 담당자들과 자리를 마련하여 그동안 있었던 상황들을 잘 정리된 서류 파일을 자세히 설명하고 그 자료를 건네주시면서 시장님께 잘 보고하라고 당부를 덧붙이셨다.

 

나는 회장님이 내민 서류를 보고 놀랐다.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한 세세한 기록, 잘 정리된 파일을 보고 성공자의 치밀한 경영철학을 현장에서 직접 체험한 것이다. 평소에는 소탈하고 친근하게만 느껴졌던 분에게서 풍겨온 강렬한 기운, 감히 범접하지 못한 나는 그 기세에 눌려 잔뜩 움츠러들었다. 맞아 성공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분의 성공 비결이 무엇인지를 직감하면서 내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참으로 대단한 마인드(mind)를 지닌 어른, 그 어른이 크고 더 크게 느껴져 존경스러움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러저런 우여곡절 끝에 제삼의 장소를 물색한다는 잠정적 계획을 합의했다. 문학관 건립에 충족된 여건의 땅이 있으면 부지는 시장님과 구청장님이 매입해 주고, 건물은 회장님께서 건축해 주기로 약조한 상황에서 지금까지 기약 없이 기다리고만 있다.

 

3 또 어느 날 회장님의 전화다

“‘용아문학상수여 계획은 아직 없는 것인가? 어떻게든 문학상을 이어가야하는데.....”하시면서 호출하신다.

3년 전 <1회 용아 박용철 문학상>을 수여하고 예산 관계로 중단되었던 것이 얼마나 아쉬웠던지 그 행사를 내년부터 부활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문학상이 중단된 것이 마음에 걸린다.”라고 하시며 현금 1억 원을 쾌척해주셨다. 매년 문학상 시상금으로 2천만 원씩을 집행하라는 근엄한 말씀과 함께 형평성 있는 집행을 위해 강진 시문학파 문학관김선기 관장님께 자문을 얻어 추진하라는 조언도 얹어 주셨다, 천사를 만난 듯 구세주를 만난 듯 그 기쁨, 아직도 설레고 감사하다.

회장님의 통 큰 기부에 힘입어 <기념사업회>는 임시 총회를 열어 정관을 개정하고 <용아문학상> 운영위원회를 구성하였다. 호남대학교 국제회의실에서 용아기념사업 심포지엄을 열어 이용섭 광주시장, 김삼호 구청장, 호남대 총장, 김보곤 이사장 등 50여 명의 내빈이 참석한 가운데 기탁금 전달식과 문학관 건립사업이 꼭 이룰 수 있기를 기원하는 행사를 성대하게 거행했다.

나는 예상치 못한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난 것을 보면서 큰 그릇을 가진 훌륭한 회장님을 발견한 것이다.

 

용아를 사랑하게 된 최상준

 

요즘도 종종 뵐 때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그동안 많은 일을 맡아왔는데 다 좋은 결과가 있었다. 그런데 용아 일은 수월하게 진행되지 않아 아쉬운 마음뿐이다.”라고 말씀을 하신다. 마음 한구석에 다소 아쉬움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여러 가지 사회사업에 거침없는 열정을 쏟으신 분이 지나온 삶에 무슨 회한이 있으련만, 과연 큰 그릇은 보통 사람과는 다른 스케일(scale)을 가지고 계신다. 이 일을 추진하면서 회장님을 가까이서 뵙는 기회를 접할 때마다 나의 삶에 대한 가치를 평가하고 성찰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 어디서도 할 수 없는 인생 공부를 하게 된 셈이다. 어둡고 소외된 곳과 꼭 필요한 곳에 큰 주춧돌이 되신 최상준 회장님 함부로 부르기도 조심스러운 이 시대의 큰 어른이다. 그 어른을 접하면서 나도 모르게 거인이라 칭호를 뇌이곤 한다.

참 나눔과 봉사의 현장을 함께한 내가 영광스럽기만 하다.

 

지금에 와서 용아기념사업회를 위한 마음이 더욱 절실하신 회장님은 분명코 용아 박용철 선생을 사랑하신 것이다.

 

이미 작은 거인 최상준

회장님은 나눔의 정신이 맘속 깊이 깃드신 분이었다.

5년 전에 호남 의병 기념사업회에서 중국 동북 삼성 독립운동 역사 탐방 차 연길 명동촌 윤동주 생가 마을 <윤동주 문학관>을 간 적이 있다. 규모 있게 잘 꾸며지고 정돈된 기념관을 보고 감탄하고 놀랐으며, 건립 기부자가 <남화토건 최상옥>이라는 표지석을 보고 또 놀랐다. 회장님 일가의 타고난 나눔 정신이 깃든 기품과 검소, 겸손은 누구나 할 수 없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정신이 아니다. 분명히 이 가문은 대대로 모든 이에게 본이 될 유전자가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인생의 본이 되신 석봉 최상준 회장님

화순에서 태어나 남화토건을설립하신 형님 최상옥 회장님의 권유로 입사해 평생직장 삼아 지내셨다. 오직 사람이 지닌 마음의 본바탕에 가치관을 두고 정도경영. 윤리경영을 사훈으로 삼았다. 어질 인에 근본을 둔 훌륭한 경영철학은 사람과 사회가 공존하는 데 크게 기여함과 동시에 광주의 대표 상장기업으로 성장해 왔다. ‘검소하게 살자를 몸소 실천하면서 나눔과 사랑을 곳곳에 생활화하시고 수많은 업적을 세우셨다.

 

·20077억 원을 쾌척 전남대학교 공대 건축학과 강의실과 다목적실을 증축. 최상준 기념 홀을 건립하셨다.

·20085) 한국심장재단1억 원을 후원. 그늘지고 소외된 어린이 33명이 치료에 온정을 베푸는 가슴 따뜻한 할아버지.

·20127월부터 6년 동안 광주, 전남 대한적십자사회장직 맡아 65백만 원 기부하고 업무 활동용 차량 3대를 기증.

·2014, 동구 학동 백화마을에 김구 선생 기념관건립 기증.

·2014년 광주광역시 북구 매곡동에 30억 원 들여 4<도서관> 짓고 8천 권의 도서와 미술품, 공예품 600점을 기증.

·201812월 화순 만연사아래 동구리 마을 35억 원 들여 2석봉미술관을 지어 미술 소장품 350점을 기증.

·202012월 서구 쌍촌동(구 대건신학대학)12억 원 들여 천주교 광주대교구박물관을 지어 기부하였다.

·2020년과 2021년에 코로나 중증 치료기관 전남대병원5천만 원 후원 등

그늘진 곳마다 온정을 베푸시고, 지역 곳곳에 문화예술의 공간을 마련하여 시민들의 안락한 쉼터가 되기도 하며,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요소요소에 많은 혜택을 주신 최상준 회장님의 문화사랑 정신은 귀감이 되어 시민 모두에게 본이 되고 두고두고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문화 경영인 최상준

 

예향, 의향, 미향이라는 문화도시 광주지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적게나마 문화예술의 자리를 마련하여 우리 눈에 보이게 하는 일을 하신 최상준 회장님의 문화사랑 정신은 우리들이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끔 문화원장인 나에게 광주를 구경시켜달라고 요청한다.

나는 그분들을 모시고 우선 경치가 있는 무등산 산장, 가사문학관, 소쇄원에 다녀와 점심은 맛의 고장, 미향 광주라 하지만 별로 어색하게 매운탕이나 떡갈비 비빔밥, 퓨전 한정식 정도로 하고 다시 아시아문화전당에 가본다, 그분들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문학관 하나 없는 광주, 가볼만한 미술관 하나 없는 광주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도 많은 역사적 인물들 모두가 문화예술의 콘텐츠요 문화브랜드인데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 아쉽고 또 아쉽다.

 

나의 제안은 광주에 5개의 문화관광벨트를 조성하여 예향, 의향, 미향 광주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지방정부가 나서야 하는 일이고 문화관광마인드를 발휘할 지도자가 있어야 하기에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미뤄 생각한다. 그러나 당장에 예향 광주만이라도 보여주기 위해 예술 플렛폼을 만들어 광주의 문화예술 대표 브랜드들을 한눈에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절실한 희망을 가져본다.

 

수필가 석봉 최상준

칠십 고령에 문단에 데뷔하여 사람이 손이 두 개 있는 이유라는 <수필집>을 발간하셨다. 사람이 두 손을 부여받은 것은 한 손은 본인의 의··주를 해결하고, 또 한 손은 남을 위해 쓰라.’는 조물주의 뜻으로 두 손이 있다는 메시지가 큰 울림을 준 첫 작품집이다.

책을 좋아해서 독서를 즐기다가 글을 썼다는 겸손의 말씀이지만 평소 몸에 밴 이웃사랑 실천과 나눔, 봉사 정신의 홀씨를 한솥밥을 거둔 임직원들에게도 전파하기 위함이었으리라. 이후에도 남화가족이 살아가는 길10권의 작품집을 상재하셨다. 한순간도 허투루 쓰지 않은 어른의 진중한 삶의 바이러스에 고질병처럼 감염되고 싶다.

 

나는 이러한 회장님을 보면서 르네상스 시대를 열게 한 이탈리아 패렌체의 코지모 데 메디치를 만난 것 같다.

한류가 세계로 뻗어가는 지금 한국의 메디치가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2022
11
                                                                                         사)용아박용철기념사업회

                                                                                          상임이사(원장) 이 현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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