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아 박용철
용아 박용철

시문학파의 창시자 용아 박용철
박용철(朴龍喆, 1904~1938)
- 1931.10 종합문예지 문예월간 창간
- 1930 시문학 창간
박용철은 1930년대 사재를 털어 문예잡지 <시문학> 3권(1930), <문예월간 > 4권(1931), <문학> 3권(1934)등 도합 10권을 간행했다.
또한 문학활동에 전념하면서도 그가 주재하던 시문학사에서 1935년 <정지용시집>과 <영랑시집>을 간행하였지만, 정작 자신의 작품은 내지 못하였다.
<시문학> 창간호에 [떠나가는 배] [밤기차에 그대를 보내고] [싸늘한 이마] [비내리는 날] 등을 발표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시 작품활동을 하였으며, <시문학> <문예월간> <문학> 및 기타 잡지에 많은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또한 발표되지 않고 유고로 전하여진 작품도 상당수에 달한다. 자신이 주축이 된 시문학 동인활동과 ‘해외문학파’, ‘극예술연구회’ 회원으로 참여하여 연극공연을 위한 몇 편의 희국(입센 원작 <인형의 집>, 그리고 [바보], [베니스 상인], [말 안하는 시악시], [사랑의 기적]... 등)을 번역 및 창작하였으며 직접 단역으로 출현하기도 했다.
방대한 번역시 등을 통해 해외문학을 국내에 소개하는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은 한국 근현대문학사에서 큰 의의라 하겠다.
또한 <삼천리문학>에 실린 박용철의 대표적인 평론인 [시적 변용에 대해서] (1938)는 지금도 널리 읽히는 시작(詩作)이론이다.
이 시론을 통하여 1930년대 초반 <시문학>이 기틀을 잡는데 많은 공헌을 하였으며, 1930년대 중반부터는 모더니즘과 기교주의 논쟁에서도 순수파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옹호하였다.

1930년 3월 <시문학> 창간을 주도했던 3인 상(像)이다.
영랑 김윤식(왼쪽), 정지용(가운데), 용아 박용철(오른쪽)
이들이 발행한 <시문학>은 당대를 풍미했던 프로문학과 낭만주의 문예사조에 휩쓸리지 않고
이 땅에 순수문학을 뿌리내리게 한 모태가 됐다.